책 틈에서

채식주의자 - 한강|“나는 더 이상 사람이고 싶지 않았다”

아라보자 스튜디오 2025. 5. 24. 02:43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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채식주의자 - 한강|“나는 더 이상 사람이고 싶지 않았다”

한강의 『채식주의자』를 읽는다는 것은, 단순히 한 여성이 육식을 거부하는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 아닙니다.

그것은 존재 그 자체에 대한 거부, 사회로부터 부여받은 '인간됨'의 궤도를 조용히 이탈해 나가는 여정을 목격하는 일에 가깝습니다.

 

이 소설은 차라리 말이 없습니다. 주인공 영혜가 입을 다물기 시작하면서, 대신 독자의 내면에서 무언가가 울리기 시작합니다.

그 울림은, 인간으로 산다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에 대한 근원적 질문입니다.

🌱 식물이 된다는 것 – 침묵의 가장 급진적인 형식

 

소설에서 영혜는 악몽을 꿉니다. 피, 살점, 날카로운 이빨로 가득한 꿈 속에서, 그녀는 깨닫습니다. **“나는 더 이상 고기를 먹을 수 없다”**는 단순한 선언은, 사실상 **“나는 이 세계가 허용하는 방식으로 존재하고 싶지 않다”**는 문장으로 바뀌어 들려옵니다.

 

채식은 이 소설에서 선택지가 아니라, **무언의 항거**입니다. 그녀는 가족과 남편, 심지어 자신의 신체마저도 더는 신뢰하지 않습니다. 그래서 그녀는 ‘사람’이기를 멈춥니다.

 

사람이기를 멈추는 대신, 식물이 되고자 합니다. 그것은 순응이 아니라, 가장 조용하면서도 완강한 탈주의 형태입니다.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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💬 “나는 더 이상 사람이고 싶지 않았다” – 존재의 해체

 

『채식주의자』는 단지 한 명의 여성의 해체 과정이 아닙니다. 오히려 그것은 언어, 사회성, 가족, 성(性), 문화 전반에 내재된 폭력을 정면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구조적 텍스트입니다.

 

그녀는 “나는 이제 사람이기를 그만두고 싶다”고 말합니다. 그 문장은 절망이라기보다, 오히려 인간이 인간에게 부여한 조건으로부터의 마지막 자유 선언처럼 들립니다.

 

무엇보다도 이 작품은 **‘거절’이 어떻게 사랑보다 더 순수할 수 있는가**를 보여줍니다. 거절은 불편함을 남기지만, 그 불편함은 인간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만듭니다. 그리고 그 질문 앞에서, 독자는 침묵하게 됩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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